일과 작업을 병행하고 있기때문에 지난 2회 개인전 준비때와는 또 다른 기분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7년의 시간이 흘러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짧은 순간들 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2회 개인전 2009년도 9월에 전시를 끝으로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방황을 하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해 헤매였던 시간이 대부분 이었다.
전주에서 서울로 옮기고, 너무나도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있던 중에 모든걸 다 잊기 위해서, 새롭게 충전받기 위해서, 뉴욕에도 잠깐 갈 수 있었다. 나의 현실과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기에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뉴욕을 잠깐씩 다녀왔던 순간들이 아닐까.
5일 일하면서 용돈을 모으기도 했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기도 했고, 그렇게 긴 연휴를 나 홀로 뉴욕에 갔던 스물 아홉의 기억과 서른살의 기억들.
어쩌면 나는 그런 외로움을 즐겼는지 모르겠다. 세계적인 대가들의 작품을 보며 심장 뛰던 그 기억들을 잊을 수가 없다. 짧은 시간 없는 돈에 비행기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지금도 생각이 들만큼..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으니까.
아직도 작품이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더욱 더 나 스스로가 풀어져서 푹 빠져들고 싶다.
작품에 대해 코치를 받을 곳이 없었던 내게 박영택 평론가 선생님의 글은 다시 한번 작품활동에 용기를 갖게 해준 귀한 시간 이었다. 그게 작년 이었고, 그때만 해도 사실 작품이 설치 등등 이것저것 실험은 계속했지만 무언가 미완성 같다는 느낌이 나 스스로에게 강했다.
이것저것 콜라보 작업을 했고,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작품이 더욱 풀어지지 못하고 경직된 느낌의 것들이었다는 것이 ..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그 간 디자인과 웹퍼블리싱, 등등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 11월 이었나.. 생각지도 않게 여전히 여기저기 공모전을 기웃거리다가 사이아트 공모전에 도전했었고, 공모에 도전했던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관장님의 전화를 받았고, 약간은 얼떨결에 개인전을 준비하게 된 것이었다. 꼭 해보고 싶던 설치 작품을 드디어 실현에 옮기게 된 것이다. 준비과정은 6개월이 넘게 걸렸고, 지난 겨울, 봄, 여름 꽃을 만들었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 이렇게 꽃을 만들어 공간을 가득 채우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것만 같아서.
설치작품과 함께 평면 작품에도 변화가 있었다. 앞으로 더욱 치밀하게 접근해 보고 싶은 작업이 너무나 많다. 이제,, 시작이다.
개인전을 준비하는 동안 전시에 선보일 작품 이외의 많은 작업을 했고, 한번씩 찾아오는 불안함과 허무함들이 사라지는 듯 하다.
내가 말이나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또 한번 지난 주 사이아트 대표님과의 미팅을 통해서 속이 시원해졌다. 아직 글은 받아보지 못했지만 많이 기대가 되고, 앞으로 또 한번 도약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 것 같다.
여전히 전시 기간에도 일은 병행하겠지만 조금은 더 나의 작품을 마주하고, 앞으로 나의 남은 30대를 불태워보고 싶다. 30대 이 시기는 작가들이 가장 활발하게 영혼을 불태워볼 수 있는 시기인것 같다. 그 시기가 30대 중반즈음인것 같고, 나 역시도 그 시기를 향해 달려가며 또 다른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다.
올해 늦어도 내년 초에는 미국 비자문제가 풀려서 전시를 보러 방학기간에라도 꼭 가고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